시제품은 책상 위에서 잘 돕니다. 블루투스도 붙고 앱도 연결되고, 이제 금형을 뜨고 첫 물량을 찍을 차례입니다. 그런데 유통사에서 KC 번호를 달라고 합니다.
이때 처음 전파법을 찾아보면 늦습니다. 적합성평가는 설계가 끝난 뒤에 붙이는 절차가 아니라, 설계 단계에서 갈래가 정해지는 절차입니다. 얼마가 들고 며칠이 밀리는지는 그 갈래가 정합니다.
시제품이 도는 것과 파는 것은 법이 나누는 단계가 다릅니다
전파법 제58조의2 제1항은 방송통신기자재와 전자파에 영향을 주고받는 기자재를 제조하거나 판매하거나 수입하려는 자에게 적합성평가를 받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만들어 보는 것까지는 걸리지 않지만, 파는 순간부터 걸립니다.
같은 법 제84조 제5호는 적합성평가를 받지 않은 기자재를 판매하거나 판매할 목적으로 제조·수입한 자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개발을 외주로 맡겼더라도 제조자·판매자 이름이 찍히는 쪽이 책임을 집니다.
네 갈래를 가르는 것은 제품 종류가 아니라 위해 정도입니다
적합성평가는 적합인증, 적합등록, 자기적합확인, 잠정인증 네 가지입니다. 전파법은 방송통신망에 위해를 줄 우려가 있는 기자재를 적합인증 대상으로, 적합인증 대상이 아닌 기자재를 적합등록 대상으로 나눕니다.
위해 우려가 낮은 기자재는 자기적합확인을 할 수 있습니다. 국립전파연구원은 USB나 건전지 전원으로 동작하는 생활가전기기류, 조명기기류, 측정·검사용 기기와 산업·과학용 기기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잠정인증은 적합성평가기준 자체가 마련되어 있지 않거나 평가가 곤란한 기자재에만 열려 있는 길입니다. 기준이 이미 있는데 일정이 급해서 쓰는 우회로가 아닙니다.
무선이 하나라도 붙으면 시험 항목이 통째로 얹힙니다
유선과 전원만 있는 제품은 전자파적합성(EMC), 즉 내보내는 잡음과 외부 잡음을 견디는 정도만 봅니다. 여기에 블루투스나 와이파이가 들어가면 주파수, 출력, 점유 주파수대폭 같은 무선 항목이 그대로 추가됩니다.
항목이 늘면 시험 일수와 시험비가 함께 늡니다. 어느 갈래인지는 제품 이름이 아니라 고시 별표의 기자재 명칭으로 확정되므로, 블록도와 안테나 사양을 지정시험기관에 먼저 보내 분류를 확인받는 편이 빠릅니다.
기인증 모듈은 시험을 줄여줄 뿐 인증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고시는 적합성평가를 받은 무선 송·수신용 부품을 장착한 기자재에 대해, 그 부품에 관한 시험성적서와 첨부서류 제출을 생략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모듈을 사다 쓰는 가장 큰 실익이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생략되는 것은 그 부품에 관한 자료입니다. 완제품은 전자파적합성 기준을 다시 만족해야 하고, 적합성평가 자체는 완제품을 만들어 파는 회사 이름으로 따로 받아야 합니다.
모듈 인증서는 무선 시험을 다시 하지 않아도 된다는 근거일 뿐, 우리 제품이 인증을 받았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안테나와 케이스를 바꾸면 생략의 근거가 무너집니다
모듈 인증은 특정 안테나와 특정 배치 조건에서 받은 결과입니다. 안테나 종류나 이득이 바뀌면 복사 특성이 달라지므로, 그 모듈 인증서가 담보하던 조건을 벗어납니다.
케이스도 같습니다. 플라스틱을 금속으로 바꾸거나 전원부를 어댑터에서 배터리로 바꾸면 EMC 결과가 달라집니다. 출력이나 주파수, 변조 방식을 건드리는 펌웨어 변경도 적합성평가기준과 관련된 변경입니다.
반대로 색상이나 겉면 인쇄처럼 회로와 무관한 변경은 여기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기준에 영향을 주는지 여부가 유일한 기준선입니다.
모델명만 바꾸는 변경과 속을 바꾸는 변경은 33배 차이가 납니다
전파법 시행령 별표 14의3은 변경신고 수수료를 둘로 나눕니다. 적합성평가기준과 관련된 사항의 변경은 적합인증 165,000원, 적합등록 55,000원입니다.
기준과 관련되지 않는 사항의 변경은 적합인증 5,000원, 적합등록 2,000원입니다. 같은 적합인증인데 165,000원과 5,000원, 33배 차이가 납니다.
금액보다 무서운 것은 시험입니다. 기준과 관련된 변경은 시험성적서를 다시 붙여야 하므로, 시험기관 일정이 처음부터 다시 걸립니다.
정부 수수료는 몇십만 원이고, 일정은 시험기관이 가져갑니다
신청 수수료는 법정 금액입니다. 같은 별표 기준으로 적합인증 165,000원, 적합등록 55,000원, 잠정인증 165,000원이며, 이 표에 자기적합확인 항목은 없습니다.
국립전파연구원 처리도 길지 않습니다. 고시의 처리기간 조항은 적합등록 신청을 즉시, 적합인증 신청과 적합인증 변경신고를 5일 이내, 잠정인증 신청을 60일 이내, 적합성평가 면제확인을 1일 이내로 정하고 있습니다.
일정을 가져가는 쪽은 지정시험기관입니다. KTR은 전자파적합등록 처리기간을 접수 완료 후 45일 기준으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시험비는 항목별로 따로 붙고, 정부 수수료와는 자릿수가 다릅니다.
연구개발용과 전량 수출용 면제는 팔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 있습니다
전파법 시행령 별표 6의2는 면제 대상과 수량을 못 박아 두었습니다. 적합성평가를 위한 시험과 품질·성능 검사용은 10대, 제품 및 서비스의 연구·기술개발용은 1,500대, 국내 시장조사용 견본품은 3대입니다.
수출은 항목이 따로 있습니다. 국내에서 제조해 외국에 전량 수출할 목적으로 만드는 기자재는 면제 수량에 제한이 없습니다. 대신 국내에 한 대라도 파는 순간 전제가 깨집니다.
면제는 저절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시행령 제77조의7에 따라 면제 확인을 신청해 확인서를 받아야 합니다. 시제품을 이 면제로 만들었다면, 그 물량은 판매용 재고가 아닙니다.
이 순서가 맞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적합확인은 대상 기자재가 고시로 한정됩니다. 우리 제품이 단순해 보인다는 이유로 자기적합확인을 택하면, 결과적으로 적합성평가를 받지 않은 상태가 됩니다.
잠정인증도 지름길이 아닙니다. 처리기간이 60일이고 지역과 유효기간, 조건이 붙는 제도라, 기준이 이미 있는 제품에는 쓸 수 없습니다.
고시 자체도 자주 바뀝니다. 2025년만 해도 4월 25일과 8월 29일에 개정 고시가 시행됐습니다. 계약 시점의 분류를 그대로 믿지 말고 시험 착수 직전에 다시 확인하세요.
양산 일정에는 이 순서로 넣으세요
인증을 설계 이후의 절차로 두면 반드시 밀립니다. 아래 순서를 개발 착수 전 일정표에 그대로 옮겨 놓으면, 적어도 같은 시험을 두 번 하는 일은 피합니다.
- 회로 확정 전에 블록도와 안테나 사양으로 기자재 분류를 확정합니다.
- 쓰려는 무선모듈의 인증서와 인증 당시 안테나 조건을 받아 생략 가능한 범위를 확인합니다.
- 지정시험기관 시험 슬롯을 금형 발주와 같은 시점에 예약합니다.
- 외관, 모델명, KC 표시 라벨을 시험 시료 제작 전에 확정합니다.
- 시험과 성적서 수령 뒤 전자민원으로 신청하고 인증번호를 받습니다.
- 인증번호를 확보한 뒤 양산을 착수합니다.
제도 원문과 대상 기자재 목록은 국립전파연구원 적합성평가 제도 안내에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발주와 일정 관리에 관한 글은 실무 가이드와 개발 노트에 모아 두었고, 기기와 소프트웨어 개발 의뢰는 Codeforest로 문의하세요.
결론: 인증은 비용 문제가 아니라 일정 문제로 다루세요
돈으로 보면 작습니다. 적합인증 165,000원, 적합등록 55,000원이 법정 수수료이고, 국립전파연구원 처리는 길어야 며칠입니다. 실제로 드는 돈은 지정시험기관 시험비이고, 실제로 밀리는 날짜는 시험 예약과 재시험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순서가 전부입니다. 무선모듈을 고르는 순간 안테나와 케이스와 모델명까지 함께 확정하고, 그 상태로 시험을 넣으세요. 설계를 다 끝낸 뒤에 인증을 알아보면 시험을 두 번 하게 되고, 그때 밀리는 것은 며칠이 아니라 한 달 단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