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던 업무 프로그램이 5년째 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버를 옮길 일이 생겨 개발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없는 번호라고 나옵니다. 사업자등록번호를 조회해 보니 폐업 상태입니다.
이때 손에 남는 것은 서버에 올라가 있는 실행 파일뿐입니다. 소스코드가 없으면 화면 문구 하나도 고칠 수 없습니다. 개발비를 전액 지급했더라도 결과는 같습니다. 이 상황을 미리 막으라고 저작권법에 들어 있는 장치가 SW 임치입니다.
개발비를 다 냈다고 소스가 우리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소스의 저작재산권은 계약서에 "저작재산권을 발주처에 양도한다"는 문장이 있어야 넘어옵니다. 그 문장이 없으면 권리는 개발사에 남습니다. 실제 개발 계약서 상당수는 산출물의 소유권만 적고 저작권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권리를 양도받았더라도 파일을 확보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미 문을 닫은 회사에서 하드디스크를 회수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권리를 넘겨받는 것과 물건을 손에 쥐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임치는 소스를 국가기관에 맡겨 두는 제도입니다
근거는 저작권법 제101조의7입니다. 프로그램의 저작재산권자와 이용허락을 받은 자가 수치인과 합의해 원시코드와 기술정보를 맡겨 두는 구조입니다. 시행령 제39조의2는 그 수치인을 한국저작권위원회로 정하고 있습니다.
맡긴 자료는 봉인되어 보관되고 발주처가 평소에 열어볼 수는 없습니다. 개발사는 소스를 넘기지 않아도 되고, 발주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신청은 온라인임치시스템에서 하거나 위원회에 방문해 진행합니다.
임치는 계약을 맺는 그 시점에 걸어야 합니다
임치는 개발사가 동의해야 성립하는 합의입니다. 발주처 혼자서는 신청할 수 없고, 개발사가 거절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법이 강제하는 제도가 아니라 당사자끼리 맺는 계약이기 때문입니다.
개발사의 협조를 얻어낼 수 있는 시점은 계약 직전, 즉 대금이 아직 넘어가지 않은 때뿐입니다. 납품이 끝난 뒤에 요청하면 계약에 없던 일이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경영이 흔들리기 시작한 회사라면 더더욱 응하지 않습니다.
임치는 사고가 난 뒤에 드는 보험이 아니라,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에만 들 수 있는 보험입니다.
이 제도의 승패는 "합의에서 정한 사유" 한 줄에 달려 있습니다
제101조의7 제2항은 이용허락을 받은 자가 "합의에서 정한 사유가 발생한 때" 수치인에게 교부를 요구할 수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법이 사유를 대신 정해 주지 않습니다. 계약서에 적힌 것만 사유가 됩니다.
위원회가 안내하는 전형적인 사유는 저작권자의 폐업이나 파산, 자연재해로 인한 소스코드 멸실처럼 유지보수를 계속할 수 없게 되는 경우입니다. 문제는 현실의 사고가 이렇게 깔끔한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교부 사유는 이렇게 적어야 실제로 받습니다
폐업과 파산만 적어 두면 회사는 살아 있는데 대응만 하지 않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개발자가 전부 퇴사해 연락이 끊기거나, 유지보수 계약 갱신을 거절당하는 쪽이 실무에서는 훨씬 자주 생깁니다.
- 폐업 신고, 파산 선고, 해산 결의, 법인 등기 말소
- 유지보수 계약의 해지 또는 갱신 거절
- 서면 요청 후 30일이 지나도록 하자 대응이 없는 경우
- 사업 양도나 중단으로 해당 제품의 지원이 종료되는 경우
판정 기준도 함께 적으세요. "장애가 지속되는 경우"처럼 다툴 여지가 있는 표현보다 "서면 통지 후 30일"처럼 날짜로 세는 문장이 안전합니다.
무엇을 맡길지도 계약서가 정합니다
위원회가 받는 임치물은 소스프로그램과 오브젝트프로그램, 설계서와 사양서, 매뉴얼, 유지보수 자료 등입니다. IT 분야에서는 설계도, 회로도, 데이터베이스, 그리고 계약으로 합의한 기술정보까지 대상에 들어갑니다.
다만 목록은 계약서에 열거한 만큼만 채워집니다. 소스만 적어 두면 소스만 들어갑니다. 데이터베이스 스키마, 배포 절차서, 외부 연동 규격서를 항목 이름으로 하나씩 적어 두세요.
수수료는 신규 30만원, 갱신 15만원입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안내 기준으로 신규 계약은 30만원, 갱신 계약은 15만원, 최신본 임치는 5만원입니다. 온라인임치시스템은 2년 단위 계약도 받아 신규 45만원, 갱신 30만원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조건에 해당하면 20~50% 할인이 적용된다고 안내됩니다. 할인 대상은 해마다 달라지므로 신청 전에 공식 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개발비가 수천만 원인 사업에서 이 정도 금액은 협상 대상이 아닙니다.
갱신하지 않으면 3년 전 소스를 받게 됩니다
임치는 맡긴 시점의 파일을 그대로 보관합니다. 그 뒤에 나간 수정분은 새로 맡기지 않는 한 들어가지 않습니다. 계약은 1년 또는 2년 단위이고, 최신본을 다시 넣는 비용은 건당 5만원입니다.
그래서 계약서에 갱신 주기를 못 박아야 합니다. "연 1회 이상, 주요 기능 변경 시 30일 이내에 최신본을 임치한다"처럼 적고 비용 부담 주체도 함께 정하세요. 임치증 제출을 유지보수 대금 지급 조건으로 걸어 두는 방법이 가장 확실합니다.
소스를 받아도 못 돌리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빌드 환경입니다. 소스 파일만으로는 실행 파일이 나오지 않습니다. 개발 도구의 버전, 외부 라이브러리 목록, 빌드와 배포 순서를 적은 문서가 임치물에 함께 들어가야 합니다.
둘째는 서버 계정입니다. 클라우드 콘솔, 도메인 관리자, SSL 인증서, 문자와 결제 연동 계정은 임치 대상물이 아닙니다. 개발사 명의로 되어 있으면 폐업과 동시에 접근이 끊깁니다. 계약 시점에 전부 발주처 명의로 만들어 두세요.
셋째는 상용 라이선스입니다. 보고서 도구나 지도 API, 상용 차트 라이브러리는 개발사 이름으로 구매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스를 받아도 그 라이선스까지 따라오지는 않습니다.
임치는 소스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장할 뿐, 그 소스를 돌릴 수 있는 상태까지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이럴 때는 임치가 맞지 않습니다
월 구독형 SaaS는 임치를 걸어도 실익이 적습니다. 서비스 코드가 수백 개 고객의 데이터 구조와 얽혀 있어서, 소스를 받아도 우리 회사 것만 떼어 띄우기 어렵습니다.
개발비가 수백만 원대인 소규모 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신규 30만원에 매년 갱신비가 붙으면 사업비 대비 비중이 커집니다. 이때는 임치 대신 저작재산권 양도와 소스 직접 인도를 계약서에 적는 편이 낫습니다.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 개발사라면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의 기술자료 임치라는 다른 창구도 있습니다.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제24조의2가 근거이고, 교부 사유는 임치기업의 동의나 파산 선고, 해산 결의, 사업 폐쇄 등입니다.
계약서 문구와 산출물 인수 기준은 실무 가이드와 운영 노트에 계속 정리하고 있습니다. 신청 절차와 최신 수수료는 한국저작권위원회 온라인임치시스템에서 확인하세요. 개발 계약 단계에서 무엇을 걸어야 할지 상담이 필요하면 Codeforest로 문의하세요.
결론: 임치는 서명하기 전에 거세요
개발사가 문을 닫아도 프로그램을 계속 쓰려면 계약 시점에 세 가지를 걸어야 합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와의 임치 계약, 폐업 외의 상황까지 담은 교부 사유 문구, 그리고 연 1회 이상의 최신본 갱신 의무입니다.
여기에 빌드 환경 문서와 발주처 명의 서버 계정, 상용 라이선스 명의까지 정리해야 프로그램이 실제로 살아남습니다. 비용은 신규 30만원과 갱신 15만원이고, 납품이 끝난 뒤에는 이 중 어느 것도 다시 요구하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