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를 연 지 몇 달 지나 우편이 한 통 옵니다. 발신인은 폰트 회사이거나 그 회사를 대리하는 법무법인이고, 귀사 사이트에 자사 글꼴이 무단으로 쓰였으니 며칠 안에 얼마를 입금하라고 적혀 있습니다.

대부분은 여기서 금액부터 깎으려 합니다. 순서가 틀렸습니다. 먼저 갈라야 하는 것은 물어줘야 하는 상황인지 아닌지이고, 그 기준은 화면에 보이는 글자 모양이 아니라 폰트 파일이 어디에 놓여 있느냐입니다.

법이 보호하는 것은 글자 모양이 아니라 폰트 파일입니다

대법원은 1996년 94누5632 판결에서 인쇄용 서체도안의 저작물성을 부정했습니다. 실용적 기능과 별도로 독립적인 예술적 가치를 가질 때에만 저작물로 보호된다고 보아, 저작권 등록을 반려한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2001년 99다23246 판결은 서체파일을 컴퓨터프로그램저작물로 인정했습니다. 윤곽선의 제어점 좌표를 고르는 작업에 제작자의 창의적 개성이 담긴다는 이유였습니다.

두 판결을 붙여 놓으면 결론이 하나로 모입니다. 침해 여부는 그 글꼴을 썼는가가 아니라, 그 폰트 파일을 복제했는가로 갈립니다.

디자인 시안 이미지 안에는 폰트 파일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배너나 상세페이지처럼 JPG·PNG로 저장된 결과물은 글자의 외곽선이 픽셀로 굳어 버린 그림입니다. 그 안에 ttf나 otf 파일은 한 바이트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도 폰트 파일을 내려받지 않고 글자 도안 이미지를 그대로 쓰는 것은 침해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통지서가 배너에 우리 글꼴이 보인다는 지적에 그친다면 주장이 약합니다. 다만 그 시안을 만든 사람이 폰트 파일을 정식 경로가 아닌 곳에서 받아 설치했다면, 그 복제 행위는 별개로 문제가 됩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화면에 보이는 글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디스크나 서버에 실제로 놓여 있는 폰트 파일입니다.

웹폰트 임베딩은 서버에 파일을 올려 나눠 주는 행위입니다

웹폰트는 woff, woff2, ttf 같은 폰트 파일을 서버에 올려 두고 방문자의 브라우저가 그 파일을 내려받아 글자를 그리는 방식입니다. 파일이 복제되고, 접속한 사람 수만큼 전송됩니다.

이미지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이미지는 폰트를 쓴 결과물이지만, 웹폰트는 폰트 파일 자체를 불특정 다수에게 배포하는 것입니다. 앱도 같습니다. 설치 파일 안에 폰트가 포함되면 배포에 해당합니다.

개발자가 아니라면 제작사에 한 문장만 물어보면 됩니다. 우리 서버에 폰트 파일이 올라가 있는지, 아니면 방문자 컴퓨터에 이미 있는 글꼴을 부르는 것인지입니다. 답에 따라 사안의 성격이 바뀝니다.

무료 폰트에서 상업적 이용 허용과 임베딩 허용은 다른 조항입니다

상업적 이용 허용은 그 폰트로 만든 결과물을 팔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임베딩 허용은 폰트 파일 자체를 다른 매체에 넣어 함께 넘겨도 된다는 뜻입니다. 앞은 결과물에 대한 허락이고, 뒤는 파일 복제와 배포에 대한 허락입니다.

무료 폰트 모음 사이트 눈누의 라이선스 요약표가 인쇄, 웹사이트, 포장지, 영상, 임베딩, BI/CI, OFL 항목으로 나뉘어 있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웹사이트 사용은 되지만 임베딩은 안 되는 폰트가 실제로 있습니다.

유료 폰트도 마찬가지입니다. AG FONT 이용약관은 전자출판물에 폰트를 포함하는 경우, 앱과 게임에 폰트 파일을 탑재하는 경우, 웹UI·웹서버용으로 파일 자체를 탑재하는 경우를 별도 라이선스가 필요한 용도로 못 박고 있습니다.

결제하기 전에 설치 경로와 사용 범위부터 확인하세요

요구 금액을 들여다보기 전에 사실관계를 먼저 확정해야 합니다. 다음 네 가지를 제작사와 함께 확인하세요.

  • 서버에 폰트 파일(woff, woff2, ttf, otf)이 올라가 있는지
  • 앱 설치 파일이나 게시된 PDF 안에 폰트가 내장돼 있는지
  • 디자이너와 개발자 PC에 그 폰트가 설치돼 있는지, 언제 어디서 받았는지
  • 상대가 지목한 폰트 이름과 실제로 쓴 폰트 이름이 정말 같은지

이미지에만 쓰였고 서버 어디에도 파일이 없다면 임베딩을 이유로 한 청구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서버에서 파일이 나오면 그때부터는 라이선스 전문을 봐야 합니다.

라이선스 전문과 배포 출처를 증빙으로 남기세요

무료 폰트를 썼다면 내려받은 페이지 주소, 받은 날짜, 그 시점의 라이선스 전문을 함께 보관하세요. 라이선스는 개정됩니다. 지금 페이지에 적힌 문구가 2년 전 조건과 같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SIL 오픈폰트라이선스(OFL) 폰트라면 사정이 분명합니다. OFL 자주 묻는 질문 문서는 CSS의 @font-face로 웹폰트를 제공하는 방식을 명시적으로 허용한다고 답합니다. 대신 저작권 표시와 라이선스 고지를 함께 담아야 하고, 폰트만 따로 파는 것은 금지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배포하는 안심글꼴파일도 선택지입니다. 이용허락 조건을 미리 확인해 모아 둔 묶음이지만, 글꼴 파일 자체를 영리 목적으로 복제·배포하려면 별도 허락이 필요하다고 안내합니다.

요구 금액의 근거를 묻고, 막히면 조정으로 가세요

저작권법 제125조 제2항은 권리 행사로 통상 받을 수 있는 금액을 손해액으로 청구할 수 있게 합니다. 출발점은 정품 라이선스 가격입니다. 요구액이 그보다 훨씬 크다면 어떤 계산인지 서면으로 물어야 합니다.

제125조의2 법정손해배상은 침해된 저작물마다 1천만 원 이하, 영리 목적의 고의 침해면 5천만 원 이하를 청구하게 합니다. 다만 침해행위가 일어나기 전에 그 저작물이 등록되어 있어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등록 여부와 침해 시점을 확인하세요.

한국저작권위원회 조정은 신청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처리되고, 신청금액 100만 원 이하는 수수료가 정액 1만 원입니다. 조정이 성립하면 재판상 화해, 즉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생깁니다.

이럴 때는 다투지 말고 정품을 사는 편이 낫습니다

서버에서 폰트 파일이 실제로 나오고 라이선스에 임베딩 허용 문구가 없다면 다툴 여지가 크지 않습니다. 파일을 내리고 웹폰트 라이선스를 정식으로 구매한 뒤, 그 사실을 근거로 금액을 조정하는 편이 빠릅니다.

개인·비영리용으로 배포된 무료 폰트를 회사 사이트에 쓴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때는 저작권 침해라기보다 이용약관 위반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안내서도 법률상 책임이 있는 경우를 침해와 약관 위반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금액이 크거나 형사 고소가 함께 왔다면 변호사 검토를 받으세요.

외주 계약에서는 폰트 책임을 만드는 쪽에 두세요

폰트를 고르고 서버에 올린 사람은 제작사인데, 내용증명은 사이트 운영자에게 옵니다. 계약서에 제작사가 납품물에 사용한 모든 폰트의 라이선스 적법성을 보증하고 제3자 청구가 발생하면 책임진다는 조항을 넣으세요.

조항보다 실효적인 것은 산출물입니다. 납품 때 사용 폰트 목록을 문서로 받으세요. 폰트 이름, 배포처 주소, 라이선스 유형, 웹폰트로 서버에 올렸는지 여부까지 적혀 있어야 합니다. 이 문서 한 장이 나중에 증빙이 됩니다.

발주자가 챙길 다른 항목은 실무 가이드 카테고리에서도 다룹니다. 웹사이트·앱 제작 문의는 Codeforest로 주시면 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글꼴 파일 저작권 바로 알기 안내서와 한국저작권위원회 조정 제도 안내도 함께 읽어 보세요.

결론: 이미지에 썼는지 파일을 올렸는지로 가르세요

폰트 내용증명을 받았을 때 물어줘야 하는 상황인지는 하나로 갈립니다. 폰트 파일이 복제되고 배포됐는가입니다. 이미지 시안에만 쓰였다면 저작권 침해 주장은 약하고, 서버에 파일이 올라가 있다면 임베딩 허용 여부가 다음 관문입니다.

순서를 지키세요. 설치 경로를 확인하고, 라이선스 전문과 배포 출처 증빙을 모으고, 요구 금액의 계산 근거를 서면으로 받은 다음에 결제를 판단하면 됩니다. 그리고 다음 외주 계약서에는 폰트 목록 제출과 라이선스 보증 조항을 미리 넣어 두세요.